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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와 기술은 변한다, 콘텐츠는 알맞게 변형된다

유희(Paige) 2023. 4. 14. 18:30

작품을 체계적으로 보지 않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영상 산업은 유튜브와 OTT가 등장한 이후, 급변했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대화에 끼기 위해 인기 있는 콘텐츠를 본다. - 대사 없는 일상적인 장면은 건너뛴다. - 1시간짜리 드라마를 10분 요약 영상으로 해치운다. - 영화관에 가기 전 결말을 알아둔다. - 인터넷에 올라온 해석을 찾아보며 콘텐츠를 본다. - 처음 볼 땐 빨리 감기로, 재밌으면 보통 속도로 다시 본다. - 원작을 최대한 각색 없이 그대로 옮겨야 본다. - 빌런은 사절. 착한 캐릭터만 나오길 원한다. 본래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제작자가 만든 대로 시청하는 수동적인 콘텐츠였다. 하지만 텔레비전과 OTT를 통해 자유롭게 영화를 건너뛰면서 보거나, 빨리 감기로 보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영상을 직접 편집하여 10분 내외의 짧은 영화로 만든 콘텐츠를 즐기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의 해설을 수시로 참고하면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을까? 이 책의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그 이면에 콘텐츠의 공급 과잉, 시간 가성비 지상주의, 친절해지는 대사가 있다고 지적하며 ‘빨리 감기’라는 현상 이면에 숨은 거대한 변화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저자
이나다 도요시
출판
현대지성
출판일
2022.11.10


1. 작품에서 콘텐츠로 : 가성비를 따지면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사람들
2. 감상에서 소비자로 : 작품 감상보다 정보 수집의 목적으로 콘텐츠를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사람들
3. 모두에게 친절한 세계관 : 이해하기 쉬운 것이 환영받는 사회
4. 개성이라는 족쇄 : 너무나 개성적인 사람들을 금방 발견할 수 있는 상황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5. 상쾌해야 찾는다 :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만 골라 보는 사람들

 

저자는 빨리감기가 시대적 필연이라 말한다. 

 

228쪽
빨리 감기는 시대적 필연이다. 사람들의 욕구가 기술을 진화시키고 기술 진화가 다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변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생긴 빨리 감기 시청, 건너뛰기 습관은 ‘가급적 적은 자원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자본주의 경계에서 거의 절대적 정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155쪽
빨리 감기로 영상을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작품 감상자’라는 의식이 약하다. 그럼 무엇일까? 바로 ‘콘텐츠 소비자’다.


수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지만 대부분 단명으로 이어진다.  인기 있는 콘텐츠라 하더라도 또 다른 콘텐츠가 나오면 열기가 금방 식는다.

 

손쉽게 잡히는대로 마구 소비되는 콘텐츠 시장, 소유하기보다 구독하고 즉각적인 만족감이 없으면 외면한다.

 

도서, 음악 시장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았다. 아니, 시대적 필연이었을까?

 

198쪽
영화 한 편에 두 시간이라는 ‘상식’은 정착된 지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당연한 것처럼 유통되고 있다.

200쪽
유튜브 편집 영상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2시간씩 들여서 소비해야 한다면 부담스러운 게 요즘 세대의 감각이다...현대인들은 모두들 바쁘다. 게다가 노동 시간이 늘어난 데 비해 수입은 제자리다. 매일같이 육아와 돌봄에 많은 시간을 쓰는 부부, 새벽까지 바쁘게 일하는 직장인, 수업과 과제에 더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대학생. 그들이 2시간짜리 영화를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느긋하게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십수 회차에 달하는 연속 드라마는 더욱 그러하다.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에는 이전까지 페이지를 넘긴 속도에 근거해 종료할 때까지의 예상 시간을 표시해주는 기능이 있다. 현대인은 눈앞의 콘텐츠에 자신이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할지에 민감하다.


확실히, 매체는 변한다.

 

내용물인 콘텐츠는 매체의 특성에 맞게 자유로이 변형된다. 

그리고 요즘 콘텐츠의 특성은 '나의 취향'을 크게 반영한다.

 

큐레이션이나 알고리즘 기술이 그렇게 만든걸까? 우리 모두는 원래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각기 장단점이 있다.

 

156쪽
신문과 잡지 그리고 인터넷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관심 없는 기사나 광고도 눈에 들어오지만 인터넷에서는 제목을 클릭해서 보고 싶은 기사만 읽을 수 있다. 즉 대충 보고 관심이 없는 기사에는 아예 눈도 돌리지 않는다. 온라인 사이트나 광고 회사는 알고리즘 해석으로 사용자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해당 사용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기사나 광고를 우선 표시한다. 그러니 관심 없는 콘텐츠는 접할 기회조차 없다.

160쪽
공감 지상주의와 타자성의 결여
공감도 중요한 요소지만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의 행동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 이해하게 되는 것도 감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상에는 자신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타자’가 존재한다. 그 가치관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존재만큼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존중은 ‘마주하고 이해하는’ 의무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치를 공감에서만 찾으려는 사람은 ‘공감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마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러면 큰 에너지가 필요한 데다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 말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이들은 “세상에 자신과 다르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혹은 그런 사람을 쉽게 적으로 치부한다.

173쪽
“딱히 누가 뭘 느꼈는지는 나랑은 상관없고, 그냥 그 작품을 보고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것도 일종의 타자 시점의 결여다. 그들은 리뷰 사이트나 스토리를 알려주는 스포일러 사이트는 읽어도 평론은 읽지 않는다. 자신과 감성이 다른 누군가가 작품의 좋고 나쁨을 지적하거나 구분하는 일에 그리 관심이 없다. 원하는 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동시에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와 해설이지, 어느 개인의 소감이 아니다.

175쪽
재치 있는 평론가는 영화를 논할 때 영화의 언어에만 기대지 않는다. 고전문학을 인용하여 지적하고, 인상파 화가의 구도를 이야기한다...하지만 Z세대는 제너럴리스트에게서 그리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다.

176쪽
‘성과로 직결되지 않는 일반적인 교양’보다 ‘직무 역량을 강화하는 전문적 지식’에서 가성비를 찾아내는 젊은이들의 기질이 엿보인다. 이 배경에는 효율적으로 커리어에 도달하도록 떠미는 사회적 압력과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저성장이 정신적 피폐함으로 자리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가성비가 중요해졌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긴 글은 읽지 않는다. 절대. 

177쪽
평론보다 스포일러 사이트, 위키피디아가 훨씬 더 친절하다. 제대로 기능에 특화되어 있다는 말이다.

179쪽
평론의 무용함은 규탄받았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지적하는 어려운 평론에 비해 좋은 것을 짧게 추천하는 틱톡 영상이 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다.

184쪽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해상도가 낮다는 사실을 통감해요. 인터넷을 사회 전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경계심이 무척 강하죠.

 


모든 것은 변한다. 기술은 특히 빠르게 발전한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변형된다.


217쪽
기술은 어느 시대든 인간이 더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기술은 ‘편하고 싶다’는 영원 불멸의 희망을 실현시켜왔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일어난 산업혁명, 20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IT혁명 모두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혁명이었다. 영상을 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영상을 보면서 얻는 쾌적함을 ‘불쾌한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면 아래 표과 같다.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상을 유료로 상영하는 세계 최초의 영화관이 탄생한 이후, 우리는 100여 년을 들여 비로소 영상을 보는 데 ‘장소와 시간, 물리적, 금전적 제약’을 걷어냈다.
-19세기 말~ : 영상은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다
-1950년대~ : 가정의 TV로볼 수 있는 ‘장소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1980년대~ : 비디오와 DVD로 볼 수 있는 ‘시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1’
-2000년대 후반~ : 영상 배급을 통해 볼 수 있는 ‘물리적, 금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2010년대 후반~ : 빨리 감기 시청, 건너뛰기 기능의 추가로 인한 ‘시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2’

222쪽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이 정도로 판매고를 올릴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이 둘에 대해 “책을 읽는 체험으로는 기존의 방법에 비해 현저히 뒤처진다”라며 인색한 평가를 하던 애서가들이 많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방법이란 출현 후 얼마간은 비바람을 맞기 마련이다. 지금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라는 새로운 방법은 제작자로부터 쉬이 환영받지 못한다. 기존의 지식인들로부터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집에서 레코드를 듣거나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행위가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라는 대의에 눌려 허용되었듯이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라는 시청 습관도 언젠가 많은 이에게 허용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옛날에 레코드같은 건 진짜 음악 축에 끼지 못한다며 쌍심지를 켜던 사람이 있었대”라며 웃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웃음을 당하는 쪽이 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빨리 감기에 대해 일일이 쌍심지를 켜는 사람들이 있었대”하고.